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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너무 많아서 휴면중...

새해부터 다시 시작합니다...새해부터...아오 OYL

by 무르엘라 | 2009/12/25 11:48 | 트랙백 | 덧글(0)

1924.04.21 타임지 제0060호 : 루이스 헨리 후버

루이스 헨리-후버(Louise Henry-Hoover 1874.03.29~1944.01.07)

1874년 03월 29일 미국 아이오와 주의 워털루에서 태어나다.
1944년 01월 07일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다.

타임지 선정 당시 50세, 향년 71세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영부인. 찰스 델러노 헨리(Charles Delano Henry)의 딸인 그녀는 1894년 산 호세 대학원에 입학하여 남편인 후버를 만나게 된다. 1899년 02월 10일 캘리포니아 주 몬트레이의 델러노 헨리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루이스는 백악관에 입성 후 후버와 긴밀한 이야기를 할 때엔 중국의 공용어인 만다린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by 무르엘라 | 2009/02/03 18:40 | ├ 1924 | 트랙백 | 덧글(0)

1924.04.14 타임지 제0059호 : 조지 피셔 베이커

조지 피셔 베이커(George Fisher Baker 1840.03.27~1931.05.02)

1840년 03월 27일 미국 뉴욕의 트로이에서 태어나다.
1931년 05월 02일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다.

타임지 선정 당시 84세, 향년 92세

미국의 금융업자·은행장·자선사업가. 1863년 국립은행제도가 만들어지자 뉴욕의 증권중개인 몇 사람과 함께 뉴욕 시에 퍼스트내셔널은행을 설립했다. 금전출납계원 겸 소규모 증권거래인으로 시작하여 25세에 이 은행의 활동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1909년 이사회 회장이 되었을 때는 미국 금융업계의 유지로 J. P. 모건, 제임스 스틸먼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많은 회사의 이사로 일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에 600만 달러를 기부한 것 외에 뉴욕 시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미국 적십자사 등 다른 기관에도 많은 기부를 했다.

by 무르엘라 | 2009/02/03 18:33 | ├ 1924 | 트랙백 | 덧글(0)

1924.04.07 타임지 제0058호 : 영국 국왕 조지 5세

조지 5세(George V 1856.06.03~1936.01.20)

1856년 06월 03일 잉글랜드 런던의 말보로 성에서 태어나다.
1936년 01월 20일 잉글랜드 노퍽 주의 샌드링엄에서 사망하다.

타임지 선정 당시 68세, 향년 81세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1910.05.06~1936.01.20). 본명은 조지 프레드릭 에른스트 알버트 윈저(George Frederick Ernest Albert Windsor)이다. 후에 에드워드 7세가 된 앨버트 에드워드 공의 둘째 아들이다.

해군에서 복무하다가 1892년 형 앨버트 빅터가 죽자 왕위를 잇기 위해 더욱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다. 1892년 5월 요크 공작이 되었으며 1893년 7월 형의 약혼녀였던 테크의 메리 공주와 결혼했다. 1901년 아버지가 즉위한 뒤 콘월 공작 겸 웨일스 공이 되었고 1910년 5월 6일 아버지를 계승해 1911년 6월 22일 대관식을 올렸다. 통치 초기에 그는 만만치 않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상원의 세력을 꺾으려는 헌법 투쟁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자유당 정부는 상원이 양보하지 않으려 하자 이 반대를 물리치기에 충분한 수만큼 상원 귀족직을 새로이 창설하겠다는 약속을 왕에게서 받아냈다. 1910년 12월의 선거에서 자유당이 승리하자 상원은 태도를 누그러뜨려 의회법(1911)을 통과시켰고 왕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할 필요가 없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의 위신은 크게 높아졌으며 그는 몇 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전선을 방문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심각한 산업 위기에 직면했다. 한편 1923년에는 총리 앤드루 보너 로가 사임함에 따라 새로운 총리를 찾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커즌 경과 스탠리 볼드윈 두 사람 모두 연로한 정치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볼드윈이 보수당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믿은 그는 하원의원들 중 왕이 선택한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28년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남은 통치 기간 동안 극도로 건강에 신경을 써야 했다. 1931년에 파운드화의 급락과 이에 따른 재정 위기로 노동당 행정부가 분열되었다. 그는 강한 정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램지 맥도널드와 내각의 일부 성원에게 맡은 직책에 남아서 보수당 및 자유당 소속 장관들과 연립내각을 구성해달라고 설득했다. 1935년 5월 즉위 25주년 기념행사 때 그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찬사가 쏟아졌다. 조지 5세는 5명의 아들을 두었다. 국왕이 된 에드워드 8세(윈저 공작), 국왕 조지 6세, 글로스터 공작 헨리, 켄트 공작 조지, 그리고 어려서 죽은 존 공 등이다. 딸 메리 공주는 하우드 백작 6세와 결혼했다. 해럴드 니콜슨이 쓴 국왕 조지의 전기가 1952년에 출판되었다.

by 무르엘라 | 2009/02/03 18:27 | ├ 1924 | 트랙백 | 덧글(0)

1924.03.31 타임지 제0057호 : 조지 이스트먼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1854.06.12~1932.03.14)

1854년 06월 12일 미국 뉴욕의 워터빌에서 태어나다.
1932년 03월 14일 미국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사망하다.

타임지 선정 당시 70세, 향년 79세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인 코닥 카메라를 선보여 아마추어 사진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로체스터의 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보험회사와 은행에 잠시 근무했다. 1880년에 사진의 건판을 제작하는 한 공정을 완성하고, 건판의 제작을 위해 이스트먼건판필름회사를 설립했다. 1888년 처음으로 시장에 선보인 코닥 카메라는 간단히 손으로 쥐고 촬영하는 상자 모양의 카메라로 연속적으로 연결된 100장의 필름이 종이 두루마리처럼 감겨져 카메라 내부에 내장되어 있었다. 필름을 모두 사용하고 나면 카메라 자체를 제조회사에 보내 필름을 현상·인화하고 새 필름을 끼워넣어야 했다. 1889년에 이스트먼은 투명한 필름을 선보였고, 1892년 이스트먼코닥사로 사업체를 재편성했다. 8년 후 그는 아동용 브라우니 카메라를 소개했다. 이 카메라는 개당 1달러에 팔렸다. 1927년에 이르러 이스트먼코닥사는 미국의 사진업계를 사실상 독점했으며, 현재까지도 이 분야에서 미국 최대의 기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1924년에 이스트먼은 그의 재산의 1/2을 기부했는데, 기부금은 총 7,500만 달러 이상이었으며, 이스트먼 음악학교가 소속된 로체스터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등이 그 수익자였다. 이스트먼은 또한 고용자들의 노동의욕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노사이익분배방식을 도입한 경영주이기도 했다. 1932년 3월 14일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y 무르엘라 | 2009/02/03 18:20 | ├ 192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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